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은 갑오의병이 일어난 1894년부터 해방되던 1945년까지 줄기차게 이어왔다. 51년의 독립운동 역사는 의병항쟁으로부터 시작되어 계몽운동, 1910년대의 국외 독립군기지 건설, 국내외 의열투쟁과 3٠1운동, 1920년대의 국외 독립군전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 투쟁, 1930~40년대 사회운동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같은 독립운동의 내용 가운데 무장 독립운동의 첫 단초를 열었던 의병항쟁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분이 운강이강년의병대장이다. 선생은 1880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역임하였으며, 1896년 2월 23일 경상북도 문경 도태장터(가은읍 상괴리)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문경·제천·단양·수안보에서 의암류인석 선생의 제천의진 유격장으로 항쟁하여 항일 의병운동의 효시가 되었다.(전기의병 : 을미의병) 선생의 의병투쟁은 우리나라에서 무장독립운동을 확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후의 중٠후기 의병전쟁(정미의병) 때에도 이강년의병대장(도창의대장)은 경상북도٠충청북도٠강원도٠경기도 등지에서 구한말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국권회복을 위하여 일제에 맞서 처절하게 싸웠다.
선생은 조국에 13년에 걸친 불멸의 의병항쟁 역사를 남기고 1908년 10월 1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이리하여 운강 이강년의병대장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장남 이승재 ‘건국훈장 애국장’, 차남 이긍재와 삼남 이명재는 ‘건국훈장 애족장’, 사촌동생 이강수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추서받았다. 선생의 가문은 가히 독립운동의 명문가라 아니할 수 없다.
일본은 독도를 자국 영토로 국내외에 알리고자 ‘다께시마의 날’을 지정하고 일본 교과서를 날조하는 등 한국과 중국을 유린한 침략을 왜곡하고 있다. 일본은 통렬한 반성은 커녕 일본의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무시하고 시대착오적인 군국주의 사상의 향수를 자극하여 또 다시 헛된 제국주의를 꿈꾸고 있다. 이러한 엄중한 시기에 본 기념사업회는 운강이강년의병대장이 목숨 걸고 평생을 바친 항일 의병투쟁의 숭고한 애국 애족의 정신을 후세에 계승하고자 한다. 또한 목숨 바친 의병투쟁의 발자취를 찾아 연구하여 자손만대로 기리는 다양한 선양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다짐한다.